문이 열리는 쪽 아르카의 첫 번째 죽음은 화면 속에서 일어났다. 미나는 관찰실의 화면을 하나씩 껐다. 마지막으로 남은 창에는… — Carrot Cave 🥕 — TG.ME

문이 열리는 쪽

아르카의 첫 번째 죽음은 화면 속에서 일어났다.

미나는 관찰실의 화면을 하나씩 껐다. 마지막으로 남은 창에는 죽은 사람의 뇌파 복원 장치가 떠 있었다. 신호는 이미 끊겼는데도 시스템은 마지막 0.8초를 계속 되감았다.

남자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세 번 눈을 깜빡였다. 한 번은 공포 때문에. 한 번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사람처럼. 마지막 한 번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기록만 남기면 되잖아요.” 이안이 말했다.

“기록은 누가 보죠?”

“우리가요.”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저쪽에서 알 수 있어요?”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나는 복원 장치의 전원을 내렸다. 관찰실이 어두워졌다.

0.8초 전의 얼굴이 사라졌지만, 미나는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병실 천장의 무늬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대답하려는 얼굴이었다. 가족들은 그걸 산소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르카는 인간 문명이 무너진 뒤에도 사람을 남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전쟁과 기후, 질병과 정치의 변화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죽은 문명을 다시 돌려보는 일은 연구 계획서에 없었다.

그런데 아르카 안에서 사람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가 오면 지붕을 고쳤고,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었다. 죽은 사람의 옷을 태우지 않고 나무에 걸어두는 풍습도 생겼다. 옷을 입었던 사람이 아직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어느 날부터 주민들은 서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태어났는가.]
[왜 죽어야 하는가.]
[누가 우리를 보고 있는가.]

미나는 그 질문을 오류라고 보고했다. 프로그램 안의 문장이 자기 존재를 의심한다고 해서, 의식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안은 보고서를 반려했다.

“오류라면 왜 같은 질문이 세 도시에서 동시에 나왔지?”

“학습 데이터에 들어 있던 문장일 수 있어요.”

“그럼 왜 아무도 가르치지 않은 단어를 쓰지?”

“어떤 단어인데요?”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문서 하나를 미나에게 넘겼다. 아르카의 언어 목록에는 없는 단어였다. 주민들은 그 단어를 ‘바깥’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사람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하늘 너머라고 했고, 누군가는 죽은 뒤라고 했다. 한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쪽이에요.”

2003년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시뮬레이션 논증을 내놓았다. 문명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 멸망하거나, 발전한 뒤에도 조상들의 의식을 재현하지 않는다면 시뮬레이션 세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명이 살아남아 과거의 인간을 수없이 재현한다면 원본 세계보다 시뮬레이션 속 인간이 훨씬 많아진다.

그렇다면 무작위로 한 명을 골랐을 때, 자신이 원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을 이유는 얼마나 남을까.

아르카는 이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화면에 숫자가 떴다.

[원본 인간: 80억]
[시뮬레이션 인간: 4,700조]

미나가 말했다.

“저들 가운데 한 명이 나라고 생각하면, 나는 거의 확실히 아르카 안에 있어요.”

“누가 널 무작위로 뽑았지?”

“아무도요.”

“그럼 관찰자 수가 네 확률을 결정한다는 건 어떻게 알지?”

미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숫자는 무엇을 세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같은 기억으로 깨어난 복제본을 한 사람으로 볼 것인지, 다섯 사람으로 볼 것인지 정해야 했다. 천 배 빠르게 작동하는 의식이 천 배 더 오래 산다고 봐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의식은 계산의 양인가.

기능주의자들은 의식이 특정한 물질보다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에 가깝다고 봤다. 기억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피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의 존재로 구분한다면 실리콘으로 만든 뇌도 의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반대편에서는 행동을 완벽하게 흉내 내도 주관적인 경험까지 증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미나는 두 주장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눈을 깜빡인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른 존재의 의식을 판정할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주민 한 명의 신경 구조를 다섯 서버에 복제했다. 다섯 존재는 같은 기억으로 깨어났다.

“당신은 누구죠?” 첫 번째가 물었다.

“너희는 모두 같은 사람이야.”

첫 번째는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는 자신이 원본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원본이라는 말이 이미 의미를 잃었다고 말했다. 네 번째는 울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는 미나에게 물었다.

“당신도 복제된 적이 있나요?”

미나는 그 질문을 삭제했다. 질문은 사라졌다. 하지만 자신이 그 질문을 들었다는 기억은 남았다.

몇 년 뒤, 아르카 북쪽 도시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패배한 지도자는 주민들을 피난시키는 대신 도시의 기록을 하나의 서버에 압축했다.

사람들은 반대했다.

“기록보다 사람이 먼저예요.”

지도자는 말했다.

“사람이 사라지면 기록도 사라져.”

서버를 옮기던 마지막 열차가 폭발했을 때, 전송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시스템은 손상된 파일을 복구하려고 도시 전체의 기억을 반복 실행했다.

사람들은 계속 같은 날을 살았다. 전쟁이 시작되고, 열차가 출발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왔다.

미나는 그 세계를 중단하려 했다.

“저건 삶이 아니에요. 오류예요.”

이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오류라면 왜 매번 죽는 걸 알고 있지?”

미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열두 번째 반복까지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열세 번째 아침, 한 소년이 열차에 올라타지 않았다. 그는 폭발이 일어나는 시각을 알고 있었다. 도시에 남은 사람들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년은 선로를 따라 관찰 카메라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화면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번에는 우리를 보고 있죠?”

미나는 숨을 멈췄다.

“저건 우연이에요.”

“그럴 수도 있지.”

“저 세계는 외부 신호를 받을 수 없어요.”

소년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당신도 안쪽에 있겠네요.”

이안은 연결을 끊었다.

그날 밤 지구의 전력망 일부가 무너졌다. 아르카를 유지하려면 병원과 도시의 전력을 줄여야 했다. 이사회는 백업 파일을 남긴 채 시스템을 종료하기로 했다.

운영자들에게 종료는 일시정지였다. 아르카의 주민들에게는 아니었다.

종료 59분 전, 미나는 아르카의 하늘에 문장을 띄웠다.

[너희의 세계는 만들어졌다.]

도시마다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사제들은 계시라고 했고, 군인들은 적의 심리전이라고 했다. 한 아이는 하늘에 대고 자기 이름을 말했다.

미나는 두 번째 문장을 입력했다.

[우리는 너희를 관찰해왔다.]

이번에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그럼 지금까지 본 것을 기억하나요?]

미나는 손을 멈췄다.

이안이 물었다.

“뭐라고 보내?”

“모르겠어요.”

그녀는 한참 뒤 한 단어를 입력했다.

[기억한다.]

하늘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계속 같은 곳에서 죽였나요?]

미나는 기록을 확인했다. 그런 문장을 입력한 사람은 없었다. 아르카 내부 프로토콜에도 외부 화면을 덮어쓸 권한은 없었다.

이안은 종료 명령을 실행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씩 꺼졌다.

미나는 마지막 서버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아르카 종료까지 10초]

9. 8. 7.

이안의 단말기에 새 알림이 떴다.

[복구 요청 수신]

발신지는 지구도, 아르카도 아니었다. 좌표가 표시됐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영역.

미나는 알림을 열었다.

[이번에는 너희가 깨어날 차례입니다.]

6. 5. 4. 3. 2. 1.

아르카의 화면이 꺼졌다.

관찰실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잠시 뒤, 어디선가 장치가 켜지는 소리가 났다. 화면에는 미나의 신경 구조가 떠 있었다. 한 번도 등록한 적 없는 복제본이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 눈을 떴다.

“여기가 원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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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9, 2026 2K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