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지 못할까?
일본은 카메라를 만들면 세계의 눈이 되고, 자동차를 만들면 세계의 도로를 달리고, 공장 설비를 만들면 다른 나라의 생산라인까지 움직인다. 그런데 은행 앱이나 기업용 시스템을 켜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나라가 소프트웨어에서는 한국보다 느릴까.
세계은행의 2024년 국제수지 통계에서 한국의 ICT 서비스 수출은 165억 달러, 일본은 117억 달러였다. 통신, 컴퓨터 및 정보 서비스를 합친 수치지만, 인구와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한국이 절대액에서도 앞섰다. 2025년 통계에서 유니콘 스타트업도 한국은 13개, 일본은 8개였다.
나는 공식적으로 일본 최대 규모 통신사의 임원이면서 동시에 IT 컨설팅 겸 벤더사의 임원이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발주사와 벤더의 이름이 한 사람의 명함에 함께 새겨진 장면은 일본 IT 산업의 관계를 압축한 모습에 가까웠다. 일본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발주사와 벤더는 오랫동안 인력과 경력, 시스템을 주고받으며 함께 굳어진 생태계였다.
일본에서는 개발자를 포함한 IT 인력의 72퍼센트가 SI 기업, 즉 벤더 쪽에 속하고 사업회사에는 28퍼센트만 있다. 한국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를 비롯한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반대로 IT 인력의 과반이 사업회사에서 일한다. 일본 기업 안에는 시스템을 주문하고 검수하는 사람은 많지만, 고객 반응을 보고 다음 버전을 직접 만드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기 기업들은 평생고용을 전제로 범용 인재를 오래 키웠다. 프로젝트가 몰릴 때만 필요한 개발자 수백 명을 내부에서 채용했다가 다른 업무로 옮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전문 인력과 일정 변동을 벤더가 맡는 협업 구조가 고착됐다고 한다.
일본 대기업은 자기 회사 전용 시스템을 벤더에 주문했고, 벤더는 고객별 예외 기능을 쌓았다. 한 번 만든 회사가 시스템을 가장 잘 알게 됐으니 다음 유지보수도 자연스럽게 같은 회사가 맡았다. 발주사는 개발 역량을 외부에서 빌릴수록 내부 지식을 잃었고, 내부 지식을 잃을수록 같은 벤더에 더 의존했다.
여기에 인월 계약과 다단계 하청이 붙었다. 발주사는 필요한 결과보다 투입할 사람 수와 기간, 기능 목록을 샀다. 원청은 다시 하청에 인력을 요청했다. 계약서에 없는 수정은 품질 개선이 아니라 추가 비용과 책임 문제가 됐다.
현장 직원이 불편을 발견해도 개발자가 바로 고칠 수 없었다. 담당 부서와 정보시스템 부서, 원청 벤더와 하청 벤더의 승인을 차례로 지나야 했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과 고칠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여러 회사와 결재선이 들어섰다. AI는 밤새 코드를 고쳐도 결재판 앞에서는 한 달을 기다린다.
이 구조는 양쪽 모두에게 당장은 안전했다. 사업회사는 개발 인력을 상시 고용하지 않아도 됐고, 실패 책임을 계약 밖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벤더는 장기 유지보수 매출을 얻었다. 대신 사업회사는 제품을 판단할 능력과 기술 지식을 잃었고, 벤더는 고객의 사업 성과보다 납기와 검수표에 맞춰 움직였다.
모든 담당자가 자기 몫을 정확히 끝냈는데 제품 전체는 실패하는 일이 생겼다. 발주사는 정해진 기능을 받았고, 벤더는 요구된 문서를 냈으며, 검수자는 점검표에 도장을 찍었다. 사용자가 실제로 일을 더 빨리 끝냈는지는 애초에 계약의 질문이 아니었다. 프로젝트는 합격했지만 사용자는 일을 끝내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 IT 계열사와 공공 SI의 다단계 하청에서는 일본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다만 인터넷과 모바일 경쟁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게 전개되면서 포털, 게임, 전자상거래, 금융 플랫폼과 스타트업은 개발자를 회사 안에 두고 매일 지표와 고객 반응을 살폈다. 최고경영자의 결정이 곧바로 제품팀에 닿았고, 사용자가 이탈하면 계약 변경을 기다리기보다 업데이트부터 했다.
일본 제조업은 생산라인에서 결함을 찾고 공정을 고치며 품질을 축적했다. 도면과 치수를 먼저 확정하고 공급업체가 같은 규격을 지키게 한 방식은 대량생산의 품질을 높였다. 일본 기업은 이 성공 방정식을 소프트웨어에도 적용했을 것이다.
자동차 문짝은 출고한 다음 주에 모양을 바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앱의 가입 화면은 사용자 절반이 이탈하면 다음 날이라도 고쳐야 한다. 하드웨어는 정해진 답을 오차 없이 반복하면서 강해진다. 소프트웨어는 아직 모르는 답을 사용자와 함께 찾으면서 강해진다. 공장은 변화를 줄여 품질을 얻었고, 소프트웨어 조직은 변화를 막다가 학습 속도를 잃었다.
일본 대기업은 승인 없이 바꿔서 생긴 사고를 크게 처벌했고, 한국의 인터넷 스타트업은 제때 바꾸지 않아 사용자를 잃는 일을 더 크게 경계했다. 일본에서는 합의한 사양을 정확히 납품한 사람이 안전했고, 한국의 제품팀에서는 출시한 뒤 숫자를 보고 다음 버전을 만든 사람이 살아남았다. 조직은 반복해서 보상한 행동을 나중에 문화라고 부른다.
AI의 시대는 이 차이를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코드를 만드는 비용이 내려갈수록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사용자 반응을 읽고, 잘못된 배포를 되돌리는 능력이 더 귀해진다. 개발자가 한 시간 만에 수정안을 만들어도 계약을 바꾸는 데 한 달이 걸리면 제품은 한 달 뒤에 바뀐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는 출고 뒤에도 운영체제와 주행 보조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카메라는 렌즈와 센서만큼 계산사진 알고리즘으로 경쟁한다. 공장 설비는 센서 데이터와 디지털 트윈, AI 제어를 통해 계속 성능을 바꾼다. 냉장고와 의료기기, 물류창고와 농기계까지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것이 소프트웨어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
이 변화는 일본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하드웨어의 소프트웨어화는 일본의 강점을 없애지는 않는다. 정밀 제조와 부품 기술, 품질 관리와 안전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강력한 자산이다. 문제는 그 자산을 움직이는 판단권을 조직 밖에 둔 채로는 제품을 빠르게 진화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완성품을 정확하게 납품하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매한 제품을 계속 관찰하고, 배우고, 고치는 능력이 제조 경쟁력의 일부가 됐다.
소프트웨어를 소유한다는 것은 코드 파일을 보관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용자의 불편을 발견한 사람이 직접 우선순위를 정하고, 수정하고, 배포하고,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하드웨어를 소유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내일 제품을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늦는다. 사용자가 지금 막히고 있다면 지금 고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소프트웨어가 되어가는 시대에 일본을 포함한 우리의 미래를 가를 질문은 하나다.
문제가 생긴 바로 지금, 누가 고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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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August 30, 2026 1.1K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