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의 주가가 매우 엉망진창인데, 이에 대해 '너무 저평가다'라는 이야기는 막상 듣기 쉽지 않다. 동전주를 밀어내고 등급제 등을 해서 정상화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봐야 문제 해결 안될거다. 그 이유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
1. 판교 밸류와 여의도 밸류라는 말이 있다. 스타트업들이 시리즈 단계에서 평가받는 밸류가 판교 밸류라면 이들이 상장한 후 평가받는 금액이 여의도 밸류다.
2. 코스닥에 신규 상장한 기업들의 상당수가 공모가 아래에서 맴돈다. 올해 상장한 기업 중 80~90%가 공모가 아래에 있고, 상장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공모가 대비 -34%에 이른다는 보고서들도 있다.
3. 상장을 주관하는 업체나 공모주를 배정받은 기관 모두가 락업 기간이 매우 짧거나 없어서 단타 위주로 운영할 생각이다보니 공모가가 크게 부풀려진다는 지적이 있다. 맞는 이야기지만 기관의 이러한 운영이 필수적이된 환경이 더 문제다.
4. 미국의 경우 70~80% 이상의 스타트업 엑싯이 M&A를 통해서 이뤄진다. 기존 기업에서 주로 인수해서 VC가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뜻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후기 시리즈까지 투자받은 스타트업이라면 엑싯의 80~90%는 IPO 를 통해 이뤄진다. 코스닥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5. 국내 대기업들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비싸게 사기보다, 대기업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인력을 빼오거나 유사한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M&A를 하면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사회적 지탄이나 규제가 따라오는 경우도 여전하다. (이놈의 '인하우스'가 매우 강조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기 그룹내에 수많은 자회사를 가지고 있어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경우보다 그냥 그 핵심 기술만 어떻게든 확보하면 나머지는 자회사들에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탈취 페널티는 아예 꿈도 못꿀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6. 코스피에서 보듯 우리나라 기업 시장 자본의 2/3 이상은 몇 십개 수준의 대기업 그룹사에 묶여 있다. 그런데 이들이 스타트업 M&A에 돈을 쓰지 않으니 스타트업들은 결국 IPO에만 목을 매게 된다. VC 입장에서 투자 스타트업이 당장 이익을 못내 일반 상장은 불가능할 경우 정부가 스타트업 살리겠다고 만들어놓은 '기술특례상장'이나 '성장성특례' 제도를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무리를 하게 된다.
7. VC 투자 단계에서는 "이 플랫폼이 아시아의 우버가 될 것", "이 바이오 기술이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라며 미국식 성장성 멀티플(PSR 같은 것)을 적용해 몸값을 수천억 원으로 키워놓지만, 막상 상장된 코스닥은 미국 시장이 아니다. 글로벌 자금이 넘쳐나는 나스닥과 달리, 코스닥은 유동성이 지극히 제한된 한국 시장이라서 상장 첫날 화려한 파티가 끝나면, 시장은 이 기업을 미국식 혁신 기업이 아니라 "내수 시장 한계에 갇힌, 당장 적자 가득한 한국 중소기업"으로 재평가한다. (물론 이렇게 내려온, 공모가보다 수십 % 내려온 가격조차도 사실 이 스타트업의 3년뒤에 올릴지 못올릴지 모르는 가상의 실적에 기반해서 책정된 가격 대비 내려온 것이라서 여전히 뻥튀기에 가깝다)
8. 결국 대기업들이 M&A로 후기 투자 단계의 스타트업들을 인수해가는 루트가 안정화되지 않는 한 아직 자생력이 부족하거나 기술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으로 밀려오는 일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바이오와 반도체 장비, 2차전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상장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실적을 반복하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전주 좀 날리고 등급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아예 상장 기업수를 한 이삼백개 수준으로 줄이면 시장 품질은 좋아지겠지. 실행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고.
9. 대기업들이 해외 스타트업은 많이 사지만 국내 스타트업의 인수 합병은 꺼리는 이유는 매우 많지만 근본적으로 딱히 국내 스타트업을 인수할 인센티브도, 인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생기는 페널티도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모은 뒤에 기술은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내용 다 뒤져볼 수 있는데 뭐하러 인수를 할까. (오픈이노베이션은 대기업이 그냥 외부 사용자로서 스타트업 기술을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인수합병은 어떻게든 그 인수한 스타트업의 기술과 인력을 활용해서 시너지를 만들 구조적 인센티브가 있다.)
10. 아마도 인센티브로 가장 좋은 것은 스타트업 인수합병 투자비의 대부분을 비용으로 인정해서 법인세를 삭감해주거나, 정부가 초과세수로 만든다고 하는 미래대응기금에서 기업의 CVC에 해당 기업의 펀딩과 매칭으로 스타트업 인수 목적으로 투자, 스타트업 인수를 촉진하는 방법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인수 합병에 따른 비용 리스크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니 대기업이 인수를 피할 이유가 많이 줄어든다.
11. 당근만 있는게 아니라 채찍도 필요한데, 아마도 기술 인증 등을 받은 스타트업을 인수한 기록이 없는 한 대기업의 법인세 특례 등을 인정해주지 않는 방법들이 효과적일 것이다. 스타트업 인수가 없으면 최저한세율 적용에서 불이익을 보게 하는 방법.
12. 정책적인 세부 방법이야 전문가들이 더 생각해보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지만, 핵심은 코스닥을 정상화하는 것이나 스타트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나 결국 우리나라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제대로 평가하고 인수하고 사업에 활용하도록 만들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답이 없는 기업이 다운라운드를 피해 무리해서 공모가를 높여 코스닥에 들어오고 코스닥 전체의 평가를 깎아먹는 일이 반복되면 별 짓을 해도 '지수가 반토막이 났는데도 여전히 고평가'라는 이야기를 피할 수가 없고, 한국의 기술 스타트업들은 성장할 길을 못찾아서 헤매는 일이 계속된다